[박근종 칼럼] 죽음의 외주화에 무너진 안전, 반복되는 후진국형 참사 언제까지

칼럼 / 편집국 / 2025-11-14 15:34:20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전, 소방준감)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에서 지난 11월 6일 오후 2시 2분께 노후(老朽)된 60m 높이 보일러 타워가 해체 작업 중 무너져 노동자 9명이 매몰되는 참사가 일어났다. 지난 11월 7일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현장에 있던 작업자 9명 중 2명은 구조됐지만 3명이 사망하고, 2명은 사망 추정, 2명은 실종 상태 아직 위치를 찾지 못했다. 현장의 2차 붕괴 위험 탓에 구조작업이 더뎌 실종자들 안위가 걱정이다. 지난 11월 5일 오전 8시 50분쯤 포스코 포항제철소 스테인리스 압연부 소둔산세공장에서 포스코DX의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4명이 전기 케이블 설치 작업을 위해 화학물질 배관을 밟고 이동하던 중 배관이 부서지는 사고로 1명 사망과 3명 부상의 사상자를 발생한 지 단 하루 만에 공공부문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하여 안타까움과 충격을 더한다.

매몰된 노동자들은 모두 해체 공사를 맡은 한진중공업 협력업체인 코리아카코에서 고용한 하청노동자들이다. 사고 원인은 아직 조사 중이지만, 위험은 하청(下請) 업체에만 떠넘겨지는 ‘죽음의 외주화’가 또 참극을 불렀다. 붕괴 사고는 노후화돼 사용이 중단된 보일러 타워의 철거 준비 작업을 하던 중 발생했다. 노동자들은 타워 발파 전 시설이 쉽게 무너지게끔 하기 위해 일부 기둥을 절단하는 ‘취약화’ 작업 중이었다고 한다. 무너진 보일러 타워는 터빈을 돌리는 데 쓰이는 증기를 만드는 설비로, 1981년 준공 이후 40년가량 전기를 생산하다가 2021년부터 사용이 중지해 왔는데 총 3기의 타워 모두 이달 16일 철거키로 했고, 그중 가운데 있던 타워가 무너지면서 노동자들이 변을 당한 것이다. 당시 영상에는 타워 상부 철골이 기울며 연쇄 붕괴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기둥 절단 후 하중 분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구조물 전체가 연쇄 붕괴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체 공정이 제대로 된 안전진단 절차 없이 이뤄진 것 아닌지, 위험성 평가를 했는지 의문이다. 더군다나 사고 당시 경고음이나 대피 방송도 없었다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규명하여 엄중히 책임을 묻고 바로잡아야만 한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12일 열린 제36차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우리가 조금씩 노력하면 조금씩은 바뀔 건데 어쨌든 이번에 반드시 이런 후진적인 산재 공화국, 반드시 뜯어고치도록 해야겠습니다.”라고 강조하고, “필요하면 관련 법을 개정해서라도 이런 후진적인 산재 공화국을 벗어나도록 해야겠습니다.”라고까지 매우 강한 어조로 산재의 완전한 근절을 강조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끔찍한 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공영 발전소에서 후진국형 산재가 줄지 않는 배경엔 ‘위험의 외주화’가 있다. 다단계 하청구조를 거치면서 노동자들의 안전은 아래로만, 뒷전으로만 밀리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수력원자력과 국내 발전 5사(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의 최근 5년간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위험의 외주화’가 매우 심각하다. 사상자 528명 중 하청노동자는 443명으로, 전체의 85%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한국동서발전이 94%로 가장 높았다.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실에 따르면 이 회사에선 최근 5년간 39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했다. 올해 1~8월에만 6건이 보고됐으며, 대부분 사고·부상 사례였지만 지난 7월에도 하청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반복된 죽음이 우연일 리 만무하다. 위험한 공사를 하청 업체에 떠맡긴 채 관리·감독에 너무 소홀한 게 아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뼈아픈 경험에서 아무런 경각심과 교훈을 얻지 못하는 치둔(癡鈍)의 우(愚)가 반복되는 것이다. 일터에서 생명을 잃는 이런 중대재해 고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국민 불안은 계속되고 있다. 원·하청 간 근본적 해법은 없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번 참사는 정부의 공공현장 안전 강화 선언 이틀 만에 일어난 대형 인명피해여서 더 참담하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1월 4일 11시 서울고용노동청에서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합동으로 ‘공공기관 긴급 안전대책 회의’를 개최하고 공공부문 불법 하도급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한 후 산업 현장의 안전의식이 높아지고 감독 관리가 강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엄포만으론 분명 한계가 있다. 공공기관부터 위험을 전가(轉嫁)시키는 고용구조를 바로잡아 ‘죽음의 외주화’를 끊어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임시방편 땜질식 처방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사고 얼개만 봐도 안전보다는 시간과 비용 절감을 우선한 측면이 의심스럽고 위험한 업무의 외주화 등 통상적 산재 사고 특징이 공기업 현장에서도 반복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동서발전의 붕괴 사고는 불과 4년 전 광주시 학동 재개발 철거 현장에서 발생한 붕괴 사고의 데자뷔(Dejavu)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노후 구조물을 철거하던 중 발생했고 누누이 지적돼 온 ‘위험의 외주화’란 점에서도 닮은 꼴이자 기시감(旣視感)이 있다. 공공 분야 현장이라고 안전을 잘 지킬 거란 생각은 오산이란 방증(傍證)이기 때문이다. 올해 1월부터 8월 중순까지 건설 현장에서 숨진 노동자 127명 중 52명(40.9%)이 공공 발주 현장에서 일했다. 노동 안전을 특별히 강조한 이번 정부 들어서도, 인천 맨홀 질식사(7월), 청도 열차 선로 작업자 사망(8월), 화순 지방도 건설 현장 추락사(8월) 등 공공에서 사망 사고가 계속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한때 ‘사고 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다 한국 건설산업은 세계시장에서 ‘K-건설’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기술과 숙련도를 자랑하지만, 여전히 국내에서도‘산재 1위’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2024년 산업재해 사망자 589명 중 276명(46.9%)이 건설업 종사자였다. 정부가 중대재해 반복 기업에 영업정지와 등록 말소까지 검토하는 강력한 대책을 내놨지만, 법과 제도 그리고 제재와 처벌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장의 안전 불감증과 하청구조의 왜곡을 바로잡지 않으면 아무리 강한 징벌도 효과가 없다. 안전은 규제가 아니라 시스템에 있음을 각별 유념해야 한다. 당국의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 문책, 재발 방지 대책이 반드시 뒤따라야만 한다. 결국 ‘산재 없는 안전한 나라’로 가려면 이번 참극을 계기로 정부가 스스로 무너진 안전을 통렬하게 대오각성하고 반복되는 후진국형 참사 근절 대책을 조속히 강구하여 실행으로 옮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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