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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세문제는 정치에서 아주 중요하다. 특히 증세, 즉 재정문제는 바로 정치문제가 되고 정권의 성패가 달린 것이다. 국가를 운영하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재정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재정은 금전을 지칭하는 말이다. 의회의 재정적 통제를 전제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 정치에서 재정이 없으면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행정부에는 국정을 운영하는 데에 필요한 재원을 취득하고(재정권력작용), 그 재원을 관리·운영·사용하는(재정관리작용) 기능이 있다. 정부의 모든 재정작용을 통제하는(재정통제작용) 권한은 국회가 가진다. 이는 국정에서 재정이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정의 여하에 따라 정부의 행정 서비스의 질과 양이 좌우된다. 재정은 국민의 인권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능(역할)을 가진다. 나아가 재정은 막대한 금전이나 물자, 서비스(행정)로서 국민의 사적 경제활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재정구조의 변화는 필연적이자 불가피하게 정권을 바꾸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권교체로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재정제도의 근본적 개혁은 혁명으로 이어진다. 즉, 증세문제가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혁명, 영국 명예혁명, 러시아혁명 등의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의 동학혁명도 지방 부패관료의 가렴주구에 대한 저항으로 세금 문제가 도화선이 됐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문재인 정부는 증세정책은 쉽게 다뤄서는 안 된다. 비록 대통령 선거의 공약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재원확보가 증세의 목적이라고 하지만, 분명히 공론화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정부와 여당은 정권을 내어줄 각오로 증세에 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증세정책 비슷한 예는 1910년 전후에 강행된 자유당의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Herbert Henry Asquith, 재임 1908년∼1916년) 영국 총리의 인민예산(People's Budget)을 들 수 있다. 당시 애스퀴스 수상은 자유당의 공약사항인 70세 이상의 노인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노령연금법(1908년)을 가결하고, 그 재원으로 부자에게 중과세하는 세제개혁으로 인민예산을 통과시켰다.
그는 인민예산에 대한 귀족원(상원)의 반대에 부딪히자 1910년에는 2번에 걸친 해산을 강행하고 총선거를 통해 민의를 물었다. 2번의 총선거에서 자유당이 단독과반수를 넘지 못했지만, 다수당으로서 노동당과 아일랜드 국민당과의 각외협력이란 형태로 내각을 꾸리고 국왕의 재가를 얻어 귀족원의 반대를 물리친다.
1911년에는 귀족원의 예산에 대한 거부권을 제한하고 서민원(하원)의 우위를 인정하는 의회법을 제정한다. 그리고 국민보험법을 제정해 국민건강보험제도와 실업보험제도를 확립하고 영국은 복지국가로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더구나 인민예산으로 해군 증강의 재원을 확보하고 독일제국과 전함 건조에서 경쟁하고 결국은 영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든다.
그러나 자유당은 몰락을 길을 걷는다. 자유당은 애스퀴스 총리 후임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 재임 1916년∼1922년) 총리까지 정권을 유지하는 등 보수당과 함께 영국의 2대 정당으로서 활약하지만, 이후 노동당의 당세확장으로 쇠퇴의 길을 걷는다. 결국, 자유당은 1988년 시회민주당과 합병으로 소멸하고 만다.
자유당의 소멸은 인민예산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그러나 인민예산으로 인해 노동자 권리가 향상됨과 더불어 노동당의 성장은 결국 자유당의 존재가치가 낮아졌다. 따라서 증세문제를 국정에서 쉽게 보아서는 안 된다. 또한, 증세는 반드시 민의를 묻고, 그에 대한 책임질 각오가 있어야 한다.
조규상 박사(통일한국재정정책연구소 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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