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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문화재청과 우리정부는 무예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무예의 중요성에 대해 일본과 중국 그리고 북한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물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지난해 7월 아시아태평양 기록유산으로 등재했던 “무예도보통지”를 지난달 24∼27일 개최됐으며 제13차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회의 심사를 거쳐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올렸다.
그렇다면 필자는 본격적으로 무예중요성의 인식을 제시해 보겠다. 「무」란 생과 사의 전쟁 극한 속에서 피어난 무예기법들이며 실제의 극치를 말한다. 「예」란 각고의 무적 재주를 통해 본연의 자아를 형성해 나아가는 근본적인 무위의 사상적 이치이다. 무적 재주는 본연에 대한 이치와 극치가 완성되어야 비로소 우리는 이것을 무예라 한다.
왜냐하면 이 재주는 본연의 마음을 다루는 심오한 몸의 작업이다. 그 종합적 가치와 의의라 할 수 있는 몸의 극치와 사상적 이치를 합친 실천적 의미이다. 무예는 상대와의 대결이라는 체험을 통해서 새로운 신체기법의 이치와 극치를 체득한다는 본디 자연 그대로의 ‘회귀적 순리’라 할 수 있다. 이는 무적 재주의 기묘하기보다는 마음에서 자연스레 우러난 무적 정취가 있어야 하는 ‘온유돈후’의 실천적 사고이다.
이 온유돈후는 부드럽고 온화하며 성실한 인품이나 시나 글을 짓는 데 기묘하기보다 마음에서 우러난 정취가 있음을 두고 이르는 말로서 표현된다.
이렇듯 무예실제의 움직임에 관한 체험을 통해 새로운 무예기법을 습득하여 다시 몸[체]에서 얻는 것[득]으로 완성시킨다. 이 무예기법은 몸으로 체득이 되어야만 하는 신체관이지만 관념화되어 몸과는 전혀 다른 길이며, 우리의 몸을 떠나 독립된 실체처럼 군림하게 된다.
이는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체득할 수 있는 극치의 무예실제와 이치의 신체사상에 관한 본연의 ‘무위정취’인 것이다. 곧 이것을 이루면 다시 ‘반박귀진’의 본연으로 돌아가야만 새로운 것이 발생하는 몸의 이치와 극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옛 무예관의 실질적인 내용에는 실질적인 상대와의 결투에서 사용되던 맨몸격투와 무기의 병장기를 잘 다루어 자기 자신을 방어하는 종합적 전투능력을 무예라 말한다. 이 종합적 전투능력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즉 병장기를 다루는 병기무예, 무기 없이 맨몸으로 상대와 대적하는 도수무예, 말을 타고 적과 전투를 하는 마상무예가 바로 그것이다.
신체관에서 「신체」란 인간의 몸을 의미하는 어구의 문자이다. 이는 올바른 마음가짐의 몸[심신일여]이다. 몸이란 인간의 형상을 이루는 전체적인 의미로서 신체활동의 기능적 상태를 내포하고 있다. 이 내포된 의미는 신체의 무한한 가치를 담고 있어 우리에게 잠재된 그 무엇인가 새로운 실제로서 나타나는 본체의 이상이다.
「관」이란 모든 사물이나 현상의 이치를 밝히므로, 동시에 도리의 옳고 그름의 올바른 판단을 위해 끝없이 번뇌한다. 즉 신체관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자기 자신의 신체를 통해 자아의 깨우침을 터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신체와 마음이 하나로 직통할 때 비로소 전인적 인간을 완성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무예신체관의 본질적 가치이다. 곧 이는 올바른 신체관에 기초한 심신조화인 ‘문무양도‘를 겸하라는 뜻이다. 이러한 문무양도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무예신체관의 극치와 이치를 깨우친 왕들은 우리 역사상에 그리 많지 않은 듯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무예신체관의 깨달음을 통해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을 으뜸으로 꼽자면 그가 바로 정조(1752∼1800)이다. 우리는 이 위대한 인물을 주저 없이 정조대왕이라고 일컫는다.
그렇다면 정조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무예실제의 복원과 재현에 있어서 어떠한 시사점을 주고 있는가! 또 우리들에게 배워야할 정조의 신체사상에 관한 교훈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의 일생을 통해 사상과 업적 뒷면에는 무엇이 존재하고 있었는가!
현시대의 무예인들에게 큰 감명을 준 서적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무예도보통지”이다. “무예도보통지”는 규장각의 검서관인 박제가(1750~1805)・이덕무(1741~1793)와 장용영의 초관인 백동수(1743~1816) 등이 정조의 지시에 의해 편찬한 것으로 그 내용에는 임진왜란을 겪으며 이 땅에서 서로의 우위를 겨루었던 중국의 창류, 일본의 도류무예가 한국자체의 여러 무예들과 함께 정리되어 있다.
이 자료는 조선중기 선조 31년(1598) 한교가 편찬한 무예 6가지로 구성한 “무예제보”와 영조 35년(1759) 정조의 부친인 사도세자(1735∼1762)가 무예 18기를 가지고 편찬한 “무예신보”와 한・중・일 삼국의 서적 145종류를 조사・분석・탐구하여 편찬된 종합무예서적이다.
특히 “무예도보통지”의 머리말에 정조의 서문을 비롯하여 조선 초기 이래 전쟁 기술의 대강과 한교 등의 서적을 바탕으로 마련한 인물들의 간단한 전기와 관계 사실들을 서술했다. 본문의 제1권에는 장창・죽장창・기창・당파・기창・낭선 등이다. 제2권에는 쌍수도・예도・왜검・왜검교전 등이다. 제3권에는 제독검・본국검・쌍검・마상쌍검・월도・마상월도・협도 및 등패의 요도와 표창 등이다. 제4권에는 권법・곤봉・편곤・마상편곤・격구・마상재 등의 총 24가지의 기법이 수록되어 있다.
그만큼 “무예도보통지”는 매우 중요한 서적이다. 정조 무예관의 전통무예문화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무예실제의 극치의 이치인 그 위대한 무예문화유산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정부와 문화재청은 소극적 기다리는 정책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으로, 국립무예박물관과 전통무예를 시연할 수 있는 공연장을 시급히 마련해줘야 할 것이다.
나아가 각종 무예사업정책으로, “무예도보통지”의 무예관의 실제에 관한 민족적 당위성을 찾아줘야 할 것이다. 이는 무예관의 무예실제에 대한 가치와 의의를 밝혀 역사적 근원에 대하여 심도 연구할 수 있도록 전문 학자들에게 물적 지원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송일훈 박사 (동아시아 무예전쟁사·문화교류정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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