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오 케" 오늘의 연재 (37) 소중한 사람들과의 운명적 만남

연재/기획 / 이현진 기자 / 2025-02-25 08:53:30
길없는 곳에 길을 만들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새벽부터 일어나 챙겼다. 첫인상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옷도 깨끗하고 밝은 색으로 입었다. 일찌감치 코퀴틀람에서 나와 차를 두번 갈아 타고 써리의 할머니 집을 찾아갔다.
버스 안에서는 내내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무엇 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인터뷰에서 떨어지면 안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몇 번이고 주소를 확인하며 두리번거린 후에야 집을 찾아냈다.
캐나다 대부분의 집들이 그렇듯 잔디가 예쁘게 깔려 있는 깨끗한집이었다.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하고서 벨을 눌렀다. 잠시 후 문이
열렸고 키가 큰 남자가 나를 맞았다.
“당신이 옥란이에요?”
“예.”
“어서 오세요. 저는 짐이라고 합니다.”
할머니의 막내 아들이라는 바로 그 노총각이었다. 키가 거의 2미터는 되어 보였다. 일단 그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후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할머니와 샤론이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깨끗한 하얀 실내화를 신고 소파에 등을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었다. 부드러운 미소 속에서 은은한 품위가 배어 나왔다. 날 바라보는할머니의 시선은 부드러웠지만 뭔가 어두워 보였다. 나는 할머니의모습에서 오랫동안 외롭게 살아온 흔적을 엿보았다. 인생에 있서미련과 아쉬움이 적잖게 남아 있는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짐이라는 남자는 얘기를 나누는 우리를 지켜보며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는 예상보다 훨씬 인상이 좋고 점잖은 사람이었다. 보통 키에 배가 좀 나오고, 머리가 서서히 벗어져 가고, 스넥 봉지를 든 채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그런 모습일 줄 알았는데..... 짐은 겸손하며 다정해 보였다.
우리의 이야기에 짐도 가끔은 끼어들었다.
“몇 년 전에 에드먼턴에서 살았는데, 불고기를 먹으러 ‘불고기 하우스’라는 한국식당에 친구랑 함께 갔었어요.”
할머니의 식구들과 얘기를 하는 동안 내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평온함이 깃들고 있었다. 할머니는 뒤뜰에서 따 온 블루베리를 냉동시켜 놓았다면서 한 봉지를 꺼내서 나에게 주었다. 나는 인자한 그모습에서 어쩜 이분이 날 원하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부터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할머니의 집을 나서면서 나는 사실 고용이 결정된 것이 아닌가싶어 샤론에게 물어봤다. 그러나 샤론의 대답은 냉정했다. 네 군데의 직업소개소에서 1명씩 후보자를 보내 오니까 아직 3명을 더 인터뷰한 후에 최종적인 결정을 하겠다는 거였다. 꼭 내가 이 집에 들어와서 살 것처럼 살갑게 대하더니 원래의 계획에서 조금도 벗어나지않는 이들의 태도에 서운함까지 느껴졌다.
샤론과 짐은 계단을 내려와 앞뜰까지 배웅을 해 주었고 할머니는커다란 위층 유리창을 통해 떠나는 나를 내려다 보았다. 그곳에서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참 좋았다. 곳곳에 피어 있는 꽃들이 밤거리를 밝게 해 주고 있었다. 집들을 지나니 큰 도로가 나왔다.
‘영어 잘하고 음식 잘 만드는 후보가 있으면 그 사람을 쓰겠지,뭐가 아쉬워 나를 다시 부를까.’
김씨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저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하자. 그러니 실망 같은 것 하지 말고부지런히 다른 일을 찾아보자.’저녁이라 버스 안은 한산했다. 운전사와 나, 그리고 인디언으로보이는 남자 한 사람만이 앉아 있었다. 스코트로드에서 내려 지상철인 스카이트레인을 타고 콜롬비아 역까지 온 뒤 코퀴틀람 가는 버스로 다시 갈아탔다.
면접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김태식 씨 가족과 늦은저녁을 먹었다.
나는 김씨네 가족들에게 조금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간단히 설명하고, 그곳에서 가져온 블루베리 봉지를 내놓았다. 아이들과 나는 아직 채 녹지 않는 블루베리를 꺼내서 아이스크림 위에 얹어 먹었다. 차가운 블루베리가 내 목구멍을 넘어갈 때마다 할머니의 온기가 전해지는 듯 했다. 인터뷰를 한 지 1주일이 지나가는데도 연락은없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기에 그다지 실망스럽지도 않았다. 그래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직업소개소의 필리핀 남자 스탠을 찾아
가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세계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세계타임즈 구독자 여러분 세계타임즈에서 운영하고 있는 세계타임즈몰 입니다.
※ 세계타임즈몰에서 소사장이 되어서 세계타임즈와 동반성장할 수 있도록 합시다.
※ 구독자 여러분의 후원과 구독이 세계타임즈 지면제작과 방송제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세계타임즈 후원 ARS 정기회원가입
1877-0362

세계타임즈 계좌후원 하나은행
132-910028-40404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 구독자 여러분의 후원과 구독이 세계타임즈 지면제작과 방송제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세계타임즈 후원 ARS 정기회원가입
1877-0362

세계타임즈 계좌후원 하나은행
132-910028-40404

후원하기
뉴스댓글 >

많이 본 기사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