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훈 칼럼> 이광희 총재와 문답: 일본 대동류 고대역사와 그리고 정통성의 실체(1)
조원익 기자
news@thesegye.com | 2018-11-22 12:58:30
그 행하여진 역사를 보면 북쪽지역의 합기유술은 약 천년 전 신라삼랑원의광(新羅三郞源義光)에 그 유래를 두고 있다. 거슬러 내려와 원씨(源氏)에서 다케다씨(武田氏)로 바뀐 성씨를 쓰며 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 다케다 가문에는 무패의 전설적인 장수 다케다신켄(武田信玄)과 합기유술의 중흥(中興) 다케다소우카쿠(武田惣角)가 있으며 그의 아들인 다케다 도키무네(武田時宗)가 그의 뒤를 이었고 현재는 곤도 가쯔유키(近藤勝之) 선생에게 전수되어 왔다고 한다.
하지만 곤도 가쯔유키(近藤勝之) 선생은 일본 고무도협회가 추구하는 너무 지나친 제정형으로 틀에 가두어 무적공방의 신체흐름 원리와 본질이 사라지고 있으며 원류의 대동류와 많은 차이점이 있다.
반면 남쪽지역의 합기무술은 사이고가문의 가노(西鄕家 家老) 사이고타노모(西鄕賴母)를 시조(始祖)로 하여 사이고시로(西鄕四郞)와 야마시타 호우에이(山下芳衛) 그리고 지금의 종가인 소가와 가즈오키(曽川和翁)선생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이 두 유파(流波)는 같은 대동류라는 동일한 명칭을 쓰고 활동을 했는데 소가와 종가에 들어와서 돌연 우리는 같은 대동류라는 명칭을 쓰고 있지만 북쪽지역의 대동류합기유술과는 전혀 다르며 아무런 관계도 없고 사상과 이념 그리고 가고자 하는 방향도 전혀 다르다고 못을 박았다.
이로 인해서 끝이 없던 수십 년 간의 정통성의 논란의 종지부를 찍는 듯 했으나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왜 돌연 입장을 바꾸었는지 주위에서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고 여론은 더 좋지 않은 쪽으로 갔으며 더욱 뜨거운 논쟁의 쟁점이 되어버렸다. 그 이유는 합기무술의 선대(先代) 종가인 야마시타 호우에이 선생이 분명 같은 대동류라는 말을 했었고 지금의 합기무술의 전신(前身)인 수기회(修氣會)시절에 야마시타 호우에이 종가가 언급한 자료도 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이광희 총재님 그런데 소가와 종가는 왜 입장을 바꾸었는지 또 정통성에 관한 무의미한 싸움을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송박사님 아시다시피 북쪽지역의 합기유술의 계승과정을 보면 비교적 투명합니다. 천 년 전의 신라삼랑원의광과 다케다신켄의 유래는 너무 오래전 일이라 확인이 쉽지 않지만 그 밑으로는 명확한 사료가 있고 활동도 활발했습니다.
반면 남쪽지역의 합기무술은 시조 사이고타노모부터 시작하여 사이고시로로 이어지는데 여기서부터 논란이 됩니다. 아무런 증거자료도 없고 얼마동안에 걸쳐 이어져 내려 왔는지 또 야마시타 호우에이 종가에게는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이어져 내려왔는지 전혀 증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사이고시로는 강도관(講道館) 유도 창시자인 가노지고로(嘉納治五郎)의 수제자이자 강도관 유도를 같이 이끌어 갔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파문을 당하고 그 후 어떻게 사이고타노모를 만나 대동류를 수련을 하게 됐는지 전혀 알 수 없으며 아무런 사료도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야마시타 호우에이 선생도 짧은 기간 종가로 있다가 지금의 소가와 가즈오키 종가에게 물려주고 그대로 자취를 감춰버립니다.
그렇게 쇼와(昭和) 48년 23세의 나이에 소가와 선생은 종가가 되는데 여기서 생각해 볼 문제는, 불과 23세의 어린나이에 종가가 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고충이 있었을 것이고 충분히 미루어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술이 종가 한 개인의 전유물이 아닌데 선대에서 말한 것을 뒤집고 전혀 다른 노선을 간다는 것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럼 왜 전혀 다른 노선을 택한 이유가 있습니다. 조심히 유추해 보건데 소가와 종가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너무 어린나이에 종가계승을 이어 받았고 사이고시로와 야마시타 종가의 지난 역사에 대해서 밝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 밝힐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정말 아무 것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정통성의 논란은 계속 되었는데도 투명하게 내 세울 것이 없기에 전면전으로 나서지 못했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면 이광희 총재님께서 갑자기 대동류에 대해서 언급을 하시게 된 이유가 있는지요! 송박사님도 아시다시피 본인은 대동류와 정통합기도를 양쪽 다 전수 받은 국내 최초의 한국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동류를 하지 않고 달인의 유파인 정통합기도, 시오다합기도(塩田合気道) 사범(師範)이며 또 제가 직접 창안한 유합도(柔合道)를 보급 중에 있기 때문에 대동류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총재님 대동류는 어떤 무예이고 또 대동류합기유술과 대동류합기무술은 다른 무술인지요! 송박사님도 다 알고 계시지만 대동류합기유술과 대동류합기무술은 한 뿌리에서 시작된 같은 무예입니다. 원래 대동관(大東館)이라는 곳에서 행하여 진 유술(柔術)이라 하여 대동류유술(大東流柔術)이라고 칭하였는데 이 명칭에 합기라는 단어를 넣고 나서부터 대동류합기유술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대동류합기유술과 대동류합기무술이 전혀 다른 별개의 무술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은 다케다 소우카쿠가 사이고타노모 선생 밑에서 대동류의 전신(前身)인 오시키우찌(御式内)를 전수받은 것이 지금의 대동류로 이어진 것입니다. 즉 오시키우찌라는 무술이 훗날 대동류합기유술과 대동류합기무술 두 갈래로 나뉘면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 것이지만 결국은 한 뿌리에서 시작된 똑같은 무예입니다.
그렇다면 사이고타노모는 누구이며 대동류합기유술은 어떻게 홋카이도에 정착하게 했는지요! 일본에는 옛부터 등원씨(藤原氏)와 비후국지씨(肥後菊池氏)는 호족(豪族)이었습니다. 즉 호족이란 왕족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 당시 신분이 높은 왕족이나 귀족들은 자기들끼리 검술, 창격술, 궁술, 체술(맨손격투술)을 연마 했습니다. 집안에서 내려오는 가전무술(家傳武術)처럼 말입니다.
사이고타노모(西鄕賴母)의 서향씨(西鄕氏)도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귀족신분이었고, 아이즈번(会津藩)의 가로(家老)로 최고의 직위와 권한을 갖은 인물이었습니다. 사이고타노모 밑에서 가전무술인 오시키우찌 즉 대동류유술을 전수받은 다케다 소우카쿠는 상당히 뛰어났고 독립을 해서 독자적인 길을 걷고 싶었지만 그 당시 시대배경 상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즘이야 스승 등지는 것을 쉽게 생각하고 백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버젓이 체육관을 오픈하기도 하지만 그 시절에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다케다 소우카쿠는 되도록 아주 멀리 이동하였고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서 지금의 홋카이도(北海道)에 정착을 한 후 무명(武名)까지 바꾸어 대동류유술에 “합기”라는 단어를 붙여 알리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대동류합기유술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 연재한다.
송일훈 박사(동아시아 무예전쟁사·문화교류정책 평론가)
전) 서울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전) 용인대학교 무도연구소 연구교수
현) 용인대학교 무도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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