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우 칼럼> 고조선과 진국(辰國; 삼한), 동·북부여, 고구려의 상관관계에 의한 만주의 영토권(제15회)

조원익 기자
news@thesegye.com | 2020-03-02 12:56:35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지금까지 살펴본 고구려의 경계 중 북쪽은 북부여와 접하고 있었다고 함으로 부여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 역시 만주의 문화주권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부여라는 것과 동·북부여에 대해서, 특히 해부루가 북부여에도 등장하고 동부여에도 등장하는 문제에 대해서 자주 혼돈을 일으킨다. 따라서 먼저 해부루에 대한 정리를 하기 위해 '삼국유사'「기이」편에 실린 고구려와 동·북 부여에 대한 건국설화를 중심으로 세 나라의 건국연대를 비교해 보기 위해서 내용을 간추려 열거해 보기로 한다.


 '삼국유사'「기이」 동부여에서는 “북부여 왕 해부루의 대신 이란불의 꿈에 천제가 내려와서 장차 자신의 아들이 이곳에 나라를 세울 것이니 도읍을 가섭원 즉 갈사나로 옮기라고 하여 그곳으로 옮긴 후 국호를 동부여로 했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같은 '삼국유사'「기이」 북부여에서는 “천제의 아들이 다섯 마리의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흘승골성에 내려와 도읍을 세우고 국호를 북부여라고 했다. 아들을 낳아 이름을 해부루라고 했다. 왕은 훗날 상제의 명에 의해 도읍을 동부여로 옮기고, 동명제는 북부여를 계승하여 졸본주에 도읍을 정하고 졸본부여라 했으니 곧 고구려의 시조다”라고 했다.

 
 또한 '삼국유사' 「기이」 고구려조에는 “북부여왕 해부루가 동부여 땅으로 피해 간 후 부루가 죽자 금와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 후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를 만났는데, ‘나는 하백의 딸 유화로, 천제의 아들이라고 자칭하는 해모수가 압록강변의 방에서 정을 통해 놓고는 가서 돌아오지 않아서, 부모가 중매도 없이 외간남자를 따른 것에 노해 이곳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금와는 이상하게 여기고 그 여자를 방 속에 가두자 햇빛이 그 여자를 비추어 임신을 해서 알 하나를 낳았는데 새와 짐승들이 알을 품어주었다. 알의 내용물을 보고 싶어도 깨뜨릴 수가 없어서 유화에게 돌려주자 한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 골격과 외모가 영특하고 저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는데 백발백중으로,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주몽(朱蒙)이라 하는 풍속에 의해 주몽이라고 불렀다.

 

 금와에게는 일곱 아들이 있어서 주몽과 함께 놀았는데 재주가 주몽에게 미치지 못하였고, 장남인 대소가 주몽은 일찍 없애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걱정된다고 왕에게 말하였지만 왕은 이 말을 듣지 않고 주몽에게 말을 기르게 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주몽을 해치려는 것을 알게 된 유화가 주몽에게 도망갈 것을 권하였다.

 

 주몽은 오이 등 세 사람을 벗으로 삼아 도망가다 엄수에 이르러, 자신이 천제의 아들이며 하백의 손자임을 밝히자 물고기와 자라가 만든 다리를 건너가게 한 다음, 추격하던 자들이 올 때는 다시 흩어져서 건널 수 없게 하였다. 졸본주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이름을 고구려라고 했다. 그리고 본래의 성은 해씨지만 천제의 아들로 햇빛을 받고 태어났다 하여 성을 고(高)씨로 삼았다”라고 하였으며, 「왕력」에서는 고주몽이 “갑신년에 즉위하였고 단군(壇君)의 아들”이라고 했다.


 이미 북부여라는 나라를 세우고 있던 해부루가 동부여로 이전한 것이라고 했다가, 해부루가 해모수의 아들이라고 하고,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이 단군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건국설화라는 점을 감안하여 신화적인 요소는 배격하더라도 복잡하게 얽힌 문제가 많아 보인다. 그러나 이 문제는 잘 정리하면 복잡한 것이 아니다.

 
 동부여의 해부루는 부여의 시조인 동명왕의 아들로 신흥세력인 해모수에게 힘의 논리에 의해서 밀려나 동부여로 천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해모수가 낳은 아들의 이름 역시 해부루로, 동부여의 해부루와 북부여의 해부루는 동명이인일 뿐이다.

 

 이것은 단군조선의 시조인 단군왕검의 아들인 2세 단군 역시 해부루라는 점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해’는 ‘밝음’을 뜻하는 것으로, 우리 한민족을 뜻하는 ‘부루’라는 족명을 만들어 낸 ‘불’과 같은 의미다. 이것은 광명의 상징인 태양을 의미하는 것으로 동서고금을 마련하고 가장 숭배 받던 존재다. 역대 단군(檀君)의 성이 해씨이므로 북부여와 동부여 모두, 서로가 단군의 적통임을 주장하기 위해서 성을 해씨로 하고 시조의 대를 이을 아들은, 우리민족을 지칭하는 명칭 중 하나인 ‘부루’라고 이름 지었다고 보면 된다. 아울러 고주몽에 대해서는 단군의 적통, 즉 우리민족의 적통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단군의 아들이라 성씨가 해씨이지만 햇빛을 받고 태어나 고귀하고 높은 사람이라는 뜻에서 성을 고씨로 바꿨다고 한 것이다.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 세계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카카오톡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